권순익의 작품을 보는 것은 마치 우리가 사는 세계의 마음 속을 현미경을 통해서 아주 깊은 바닥 끝까지 관찰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.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볼 때 그의 작품은 세모의 산이기도 하고, 네모의 바다이기도 하고,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흙이기도 하며, 때로는 열린 창으로 쏟아지는 그저 빛이기도 하다. 가까이 다가가서 바라볼 때 그의 작품은 그가 한없는 무아지경에서 창조해 낸 끊임없는 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, 마치 물 속에서 반짝이는 생명력으로 가득 찬 개구리의 알처럼 입체의 원 속에 또, 그리고 또 원을 품고 그의 작품들은 결국 나인지 산인지 물인지 구별할 수 없는 그저 하나의 생명으로, 또 생명과 같은 죽음으로 보는 이에게 다가온다.
오랜 세월 동안 '자아'를 찾는 구상 작업 끝에 그가 원을 바탕으로 한 추상 작업에 이르게 된 것은 그러므로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. 이번 전시는 작가의 신작들을 소개하는 전시이지만, 보는 이들이 이 전시를 통해 지난 30년의 작업 동안 작가가 무엇을 찾고자 했는가, 그리고 이 전시를 도약판 삼아 앞으로 무엇을 계속 추구해 갈 것인가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.